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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2001) 본문

영화

A.I.(2001)

DZIL 2019. 8. 5. 06:31

"AI, 인공지능이 인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는 근 20년간 영화사를 비롯한 소설, 게임 모든 분야에서 가장 원대한 관심사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로봇 개발 분야에서도 사람과 감정적 교류가 가능한 인공지능 로봇을 만드는 데 모두가 큰 공을 쏟고 있다.

 

실제 매일같이 감정을 공유하고, 교류하고, 사랑하고, 대화를 나누는 인격체가 주위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왜 인간은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을 똑같이 수행할 수 있는 고철덩어리를 만드려고 하는 걸까? 왜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처럼'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기계 따윌 만드려고 하는 걸까. 정말로 그것들이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날이 올까.

 

AI는 분야에 따라 다양한 특수성을 가지고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 모두 인간을 위해 설계되었다는 것. 인간의 불필요한 노동을 줄이고 인간이 하기 힘든 일을 AI가 대신해 해줄 거라는 거다. 굳이 노동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본디 인간관계란 상호간의 감정 소모를 필수로 하는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 사람과 신뢰를 쌓고 진실성 있는 대화가 오고 가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나'라는 인간을 상대방에게 증명해야 함은 물론 그 사람과 나의 취향이 맞는지부터 아주 사사로운 것들까지. 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적지 않은 투자를 해야 한다.

 

이런 프로세스를 제쳐두고 그저 나라는 인간을 아무 이유없이 사랑해주고, 따라주고, 마치 진짜 인생의 동반자처럼 느끼게끔 만드는 것들, 애초에 그렇게 설계된 것들을 인간은 더없이 갈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GROOVE X사는 작년 12월, 귀여운 반려로봇 'LOVOT'을 출시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로봇은 오로지 인간에게 사랑받기 위해 존재하는 로봇이다. 마치 반려동물처럼, 내가 집에 오면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안아달라고 나에게 조르고 귀여운 애교를 부린다. 외형도 그럭저럭(..) 귀엽게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디자인이 비호감이면 인간에게 반감을 살 수 있으니까 심히 의도적으로 모에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지금까지 출시했던 반려로봇들과는 다르게 실제 생명체를 안았을 때처럼 온기를 느낄 수 있게끔 따뜻하고 부드럽게 제작되었다고 한다.

 

단순 호기심이 아닌 이상 진짜로 이 로봇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지만 반려동물에게 그만큼의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사람

-밥 먹이기, 똥 치우기, 놀아주기, 감정 교류 따위의 귀찮은 것들을 하지 않고도 '반려 동물을 키우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사람

 

한 마디로 진짜 생명체의 구실은 하지만 진짜 생명체가 아니라는 사실로부터 오는 안도감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한다. 그래봤자 로봇도 기계에 불과하니 그에 따른 어떠한 도덕적 책임도 따르지 않으니 말이다. 설령 실수를 저질러도 그만한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 다시 고치면 예와 같이 나를 따르고, 배터리가 다 닳지 않는 한은 평생 나의 사랑을 갈구할 테니까. 내가 많은 걸 노력하지 않아도 그 로봇의 사명은 나라는 존재 그 자체가 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기분이 나쁘고 찜찜하다고. 당연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 영화를 보면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저 인간의 형태를 한 기계들이 너무나 소름 돋을 만큼 인간이랑 유사하게 행동한다. 인간을 모방하는 것에 불과한 그것들이 정말로 사람의 형태를 띠고 있어서 자칫 정말 자발적으로 사고를 하고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인간에 의해 애초에 그렇게 설계됐다는 사실을 앎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우리와 너무나도 닮아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 모습이 크리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게 머지않은 미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이 찜찜함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데이빗은 마틴을 대신해 입양되었지만 마틴이 돌아오자 가차 없이 버려졌다. 데이빗을 버리면서 모니카는 수만 가지의 감정이 교차했을 것이다. 데이빗이 마치 '진짜 아이' 같아서. 자신의 사랑만을 갈구하는 한낱 어린아이의 모습에 불과해서. 소매를 붙잡고 애걸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버릴 수 있었던 건 데이빗이 실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가능했던 게 아닐까 한다. 더 소중한 자신의 '진짜 아이' 마틴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며 그렇게 수없이 스스로를 합리화했을 거다.

시스템상으로 그렇게 구축된 데이빗이 남은 수명 평생 동안 엄마인 모니카의 사랑만을 원하고 엄마를 필요로 하는 걸 앎에도.. 그래도 제조 공장으로 가서 전원을 꺼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냥 그렇게 폐기되면 영원히 끝이니까. 어차피 한낱 기계 덩어리에 불과하니까.

 

유감스럽게도 데이빗은 자신이 왜 버려졌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그야 '진짜 사람'이 아니라서. 그래서 '진짜 사람'이 되고자 갈망한다. 이건 공장에서 제조하고 시스템을 처음 구축할 때 설계하지 않았던 사항이다. 엄마의 사랑을 되찾고자 자신을 진짜 숨이 붙은 남자아이로 만들어 줄 파란 요정을 찾아 떠나는 것. 데이빗은 마침내 파란 요정을 찾는 데 성공하고 2000년의 시간이 흘러 결국 작동이 멈출 때까지도 계속해서 같은 소원을 빈다.

인류는 결국 멸망했지만 데이빗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의 역사를 증언하는 마지막 생명체가 된다. 그리고 다른 외계 생명체에 의해 데이빗이 그토록 갈망하던 소원을 잠시나마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들은 데이빗이 인간이 제작한 기계라는 걸 알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얘기해 준다.

 

 

영화에서 안드로이드는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누군가에겐 불길한 존재이며 누군가에겐 또 다른 희망의 시작으로 묘사된다. ㅡ결국 그 희망의 끝은 머지않아 파멸해버리고 말았지만ㅡ 여기저기 부품이 뜯겨나간 채 기계적으로 삶을 울부짖기만 했던 로봇들과 "실제 사람처럼 울부짖던" 데이빗은 전혀 다른 대우를 받는다. 앞서 온몸이 해체되고 녹여진 AI들과 데이빗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오로지 사람을 위해,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라는 점. 죽음이 두려워 삶을 갈구하던 것 또한 같다. 그런데 관객들은 마치 진짜 살아있는 어린아이처럼 울부짖는 데이빗에게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곤 처형 중단을 요구한다.

AI가 파괴되는 광경을 지켜보며 희열을 느끼던 인간들이 진짜 아이 모습을 한 AI에게는 난데없는 선처를 베푼다. 그게 단지 아이의 형을 한 AI라서였을까 아니면 조금 더 감정적으로 사람들에게 호소를 해서였을까. 참 이중적인 모습이다. 다 헤진 로봇은 생명체가 아니어서 괜찮다는 심리적 안도감을 확실히 줄 수 있었지만 데이빗은 그렇지 않으니 일종의 죄책감, 불안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한 게 아닐까 한다. 생명 존엄성과 도덕성, 이기심,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인간 본연의 것들.

 

 

단순 업무를 맡도록 설계된 안드로이드와 데이빗이 다른 점은 뭘까? 얼마큼 인간에 더 가깝게 만들어졌냐는 정교함의 차이? 아니, 더 나아가 사람과 AI를 구분 짓는 건 뭘까? 지구라는 행성이 존재한 이래로 다양한 생명체들이 이 땅을 밟아온 만큼, 먼 훗날엔 AI도 그런 지구에 실존하는 하나의 생명체, 인격체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정말 매트릭스에 나온 것처럼 안드로이드가 인간을 지배하는 날이 올까. 그럼 반대로 창조주에겐 피조물의 멸망을 허락할 권리가 있을까.

 

이 주제로 양립하는 논쟁 가운데 내 생각은 이렇다. 영화나 게임과 같은 매체에서 선사하는 이 비극적인 결말이 우리의 미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결국 인간에 더 가까워진 AI들은 인간과 같이 행동하려 들 것이다. 인류가 지난 수 천년의 역사 간 되풀이했던 실수처럼 AI들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인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인간과 같은 욕망을 품고 종말엔 인간을 뛰어넘고자 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인간에 가깝기에 더욱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그러한 고지능의 안드로이드를 개발해서 그 개체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보급이 일반 가정에 평준화됐다는 전제 하에나 가능한 얘기지만.

이 같은 사태를 예언하고 경고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는 한, 인간은 결국에 해낼 것이다. 이미 착실히 진행 중에 있다. 그리고 인류의 새로운 도약은 결국 그들의 피조물로 인해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그게 설령 AI와 같은 인공지능이 아니더라도 언젠간 반드시.

 

누군가에겐 너무나 먼 미래 같고 마냥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지금 인류의 발치 앞까지 와 있다. 현 인류가 그것을 발아들일 준비가 되었냐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하겠다. 이건 찬성과 반대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과욕에 따른 부작용은 마땅히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지는 인간이 택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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