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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 (2015) 본문

영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 (2015)

DZIL 2019. 8. 13. 08:45

멕시코 카르텔의 잔인한 현실을 케이트라는 캐릭터의 관찰자 시점으로 냉철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관람객은 곧 철저히 케이트의 시선에서 '늑대소굴' 안의 내막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 곳에선 나의 부유함과 내 가족의 안전을 영위하기 위해 매일 수없이 많은 가족들을 죽인다. 머리에 총구가 겨눠지면 "집에 아내와 아이가 한 명 있어요."라고 말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부정부패를 저지른다. 피는 피를 부르고 복수는 복수를 부르는 굴레 안에서 그 연쇄를 끊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내가 먼저 죽지 않기 위해 방아쇠를 당길 뿐이다.

차에서 내려 마누엘을 한참이나 말없이 쳐다보던 실비오의 눈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것이 영화의 모든 걸 대변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아레즈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다. 총격음을 음악삼아 축구를 하는 아이들이었기에 실비오의 아들은 아빠의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매서울 만큼 잔인한 장면이지만 누군가에겐 보탬 하나 없는 현실이기에 더욱 더 잔인할 수밖에 없다.

후아레즈의 초입부터 조금 더 깊숙히 있는 활기를 잃은 빈민촌, 곳곳에 걸려있는 시체를 롱테이크로 찍은 장면을 볼 땐 그야말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일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안락한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감상 중이던 내 모습과 꽤나 괴리감이 느껴졌다. 이 장면을 보고 나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이 세상은 전부 확률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가난한 나라의 누군가로 태어날 확률, 중국의 부자로 태어날 확률, 한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카르텔의 수장으로 태어날 확률, 일반 시민, 여성 혹은 남성, 동양인, 백인, 또는 흑인으로 태어날 확률 등 경우의 수는 무수히 많다. 그리고 인생은 항상 상대적이다. 나는 멕시코 국경선ㅡ삶과 죽음의 경계선ㅡ에 있는 이들보다 운이 좋았다고 봐야 하는 건지. 나는 어떤 확률을 가지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나로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는 건지 생각했다.

어찌 됐든 그들과 아주 가까운 곳에 죽음이 상주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니 내 처지가 그들보다 낫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걸까? 이런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걸 앎에도 사람은 내가 처한 상황의 사소한 것 하나라도 개선되길 바란다. 그러기에 망설임 없이 남의 불행을 자처한다. 그리고 거기서 위안을 얻는다. 내 현실은 그렇지 아니함에 안도한다. 무수히 반복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실에 영화는 없다. 극적으로 치닫는 희극도 비극도 아닌 오로지 현실만 있을 뿐. 그걸 너무나 잘 나타낸 영화이다. 2편을 2년 전 쯤에 먼저 봐서 이게 같은 시리즈가 맞는지 헷갈릴 정도로 비교되는 묵직한 연출이다. 조금 더 통쾌하고 화려한 액션을 기대했지만 그런 게 없어도 충분했다. 그저 늑대소굴에 잠깐 들어간 토끼의 입장에서 바라볼 뿐이었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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